요즈음 어린이들 틈에 '뚱이'라는 속된 말이 널리 쓰여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좀도둑질을 하는, 그래서 기피해야 할 아이를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은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말의 뿌리가 동이(東夷)라는 말의 중국식 발음이라는 사실이 전제되어야 한다. 중화사상에 찌든 중국 사람들은 자기 나라 밖의 민족이나 나라들을 동이,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고 하여 모두 오랑캐로 부르고, 또 오랑캐로 여겼다.
우리 나라가 중국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어서 동이, 곧 뚱이로 얕잡아 부르는 것이 상식이었을 것이다. 이 뚱이가 좀도둑과 연계된 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청나라에 파견되는 사신을 따라갔던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그것이 나온다.
백수십 명에 이르는 한국 사신 행차가 중국 땅을 지날 때마다, 벌여놓았던 저자나 점포들이 후닥닥 문을 닫고 치워버리고는 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신을 따라가는 많은 조선 하인이나 조선 종들이 이들 가게에 들어가 좀도둑질을 하거나 속임수를 쓰거나, 심지어는 약탈까지 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어, '조선 사신 행차!' 하면 '뚱이'라고 외치고 반사적으로 철시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병자호란 때 납치되어 가 집단촌을 이루고 사는 고려촌을 지날 때도 뚱이짓을 자행하며 고향 소식을 듣고 싶은 망향의 한을 더욱 슬프게 했던 것이다.
뚱이는 이처럼 한국사람을 깔보고 멸시하는 말로 없어져버렸어야 했을 말인데도, 왜 이 말을 옛 조상들이 받아들여 써 왔고, 얼마나 자주 썼기에 수백 년 동안 명맥을 이어 요즈음 아이들 사이에서 부활하게 되었는가 말이다.
우리는 옛날부터 우리의 것을 깔보고 얕보고 자조하는 자학적 사고방식에 찌들어 있었기에 이 말을 신주 모시듯 모시고 빈도높게 써 왔기 때문일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틈에끼어 사대하지 않고 살 수 없었던 여건이 문화까지도 오염시켜 외국 것, 대국 것은 선별 없이 무작정 좋고 선이며, 우리 것, 즉 소국 것은 선별 없이 무작정 나쁘고 악이라는 사고의 틀이 한국 사람에게 박혀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서 걸핏하면 "조선 사람이 그렇지 뭐", "엽전들 하는 일이 그렇지", "한국 종자, 그렇고 그렇지 뭐" 하는 자조하는 말을 너무 자주 들어왔다.
이 중국 사대가 개화기 이래 구미(歐美) 사대로 고스란히 탈바꿈하며 합리적이며 과학적이고 선진적인 서양 것이면 선별 없이 좋고 선이며 고급이며, 우리 나라 것이면 선별 없이 나쁘고 악이며 저질이라는 사고가 쇠틀로 박혀버렸다.
아무리 구미(歐美) 문화가 선진적이라고 해도 취할 게 있고 취하지 못할 게 있게 마련이다. 후진국이라도 취할 건 취하고, 취하지 않을 건 악착같이 취하지 않는 선별이 분명한데, 우리 한국처럼 우리의 것은 몽땅 열등시하며 찢어발기고 짓밟아 먹칠하는 나라나 민족은 이 세상에 그 예를 찾아볼 수가 없다. 서양 문화나 서양의 가치관에서 보더라도, 우리의 정신문화나 물질 문화가 열등하고 후진적이며 창피하여 그렇게 후닥닥 소멸시켜야 할 만큼 저질일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후, 풍토, 생업, 풍속, 종교, 역사, 전통, 의식주, 제도…… 모든 것이 같지 않기에 한국 나름대로 형성된 한국다운 존재가치, 곧 다른 나라나 민족에게 찾아볼 수 없는 고유의 동일성(同一性)은 지니고 있으며, 그 동일성이 국제사회에 발전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우리 나라만이 가진 소중한 자원들인 것이다.
비근한 예로 근간에 개정된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Kimchi'라는 단어와 'Ondol'이라는 단어가 새로 수록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곧 한국 고유 문화인 김치가 발효 음식으로 세계적인 각광을 받고 있고, 온돌도 고위도(高緯度)의 유럽 주거 생활에서 밀물처럼 채택되고 있는 것이다.
보다 많은 동일성 문화를 들고·이고·업고 국제사회에 나갈수록 존재가치를 지니며, 우대받고, 존경받고 살 수 있는 것이다. 곧 한국인의 동일성을 여러 분야에서 추려 온 필자는 한국 것을 얕보는, 곧 '뚱이식'의 그릇됨을 절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릇된 사고에서 그릇 해석된 동일성을 바로잡아 보려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오염된 한국인의 사고방식들에서 때를 씻어버리고, 새로 보고 다시 보려는 저자의 뜻을 공감해 주면 고맙게 생각하겠다.
1992년의 글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엄청난 교훈.
읽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지식인의 이야기다.
독선과 독단으로 해치워버릴 일이 아닌데
왜 자꾸만 그네들은 자기네들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는지.
우리 나라가 중국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어서 동이, 곧 뚱이로 얕잡아 부르는 것이 상식이었을 것이다. 이 뚱이가 좀도둑과 연계된 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청나라에 파견되는 사신을 따라갔던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그것이 나온다.
백수십 명에 이르는 한국 사신 행차가 중국 땅을 지날 때마다, 벌여놓았던 저자나 점포들이 후닥닥 문을 닫고 치워버리고는 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신을 따라가는 많은 조선 하인이나 조선 종들이 이들 가게에 들어가 좀도둑질을 하거나 속임수를 쓰거나, 심지어는 약탈까지 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어, '조선 사신 행차!' 하면 '뚱이'라고 외치고 반사적으로 철시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병자호란 때 납치되어 가 집단촌을 이루고 사는 고려촌을 지날 때도 뚱이짓을 자행하며 고향 소식을 듣고 싶은 망향의 한을 더욱 슬프게 했던 것이다.
뚱이는 이처럼 한국사람을 깔보고 멸시하는 말로 없어져버렸어야 했을 말인데도, 왜 이 말을 옛 조상들이 받아들여 써 왔고, 얼마나 자주 썼기에 수백 년 동안 명맥을 이어 요즈음 아이들 사이에서 부활하게 되었는가 말이다.
우리는 옛날부터 우리의 것을 깔보고 얕보고 자조하는 자학적 사고방식에 찌들어 있었기에 이 말을 신주 모시듯 모시고 빈도높게 써 왔기 때문일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틈에끼어 사대하지 않고 살 수 없었던 여건이 문화까지도 오염시켜 외국 것, 대국 것은 선별 없이 무작정 좋고 선이며, 우리 것, 즉 소국 것은 선별 없이 무작정 나쁘고 악이라는 사고의 틀이 한국 사람에게 박혀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서 걸핏하면 "조선 사람이 그렇지 뭐", "엽전들 하는 일이 그렇지", "한국 종자, 그렇고 그렇지 뭐" 하는 자조하는 말을 너무 자주 들어왔다.
이 중국 사대가 개화기 이래 구미(歐美) 사대로 고스란히 탈바꿈하며 합리적이며 과학적이고 선진적인 서양 것이면 선별 없이 좋고 선이며 고급이며, 우리 나라 것이면 선별 없이 나쁘고 악이며 저질이라는 사고가 쇠틀로 박혀버렸다.
아무리 구미(歐美) 문화가 선진적이라고 해도 취할 게 있고 취하지 못할 게 있게 마련이다. 후진국이라도 취할 건 취하고, 취하지 않을 건 악착같이 취하지 않는 선별이 분명한데, 우리 한국처럼 우리의 것은 몽땅 열등시하며 찢어발기고 짓밟아 먹칠하는 나라나 민족은 이 세상에 그 예를 찾아볼 수가 없다. 서양 문화나 서양의 가치관에서 보더라도, 우리의 정신문화나 물질 문화가 열등하고 후진적이며 창피하여 그렇게 후닥닥 소멸시켜야 할 만큼 저질일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후, 풍토, 생업, 풍속, 종교, 역사, 전통, 의식주, 제도…… 모든 것이 같지 않기에 한국 나름대로 형성된 한국다운 존재가치, 곧 다른 나라나 민족에게 찾아볼 수 없는 고유의 동일성(同一性)은 지니고 있으며, 그 동일성이 국제사회에 발전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우리 나라만이 가진 소중한 자원들인 것이다.
비근한 예로 근간에 개정된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Kimchi'라는 단어와 'Ondol'이라는 단어가 새로 수록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곧 한국 고유 문화인 김치가 발효 음식으로 세계적인 각광을 받고 있고, 온돌도 고위도(高緯度)의 유럽 주거 생활에서 밀물처럼 채택되고 있는 것이다.
보다 많은 동일성 문화를 들고·이고·업고 국제사회에 나갈수록 존재가치를 지니며, 우대받고, 존경받고 살 수 있는 것이다. 곧 한국인의 동일성을 여러 분야에서 추려 온 필자는 한국 것을 얕보는, 곧 '뚱이식'의 그릇됨을 절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릇된 사고에서 그릇 해석된 동일성을 바로잡아 보려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오염된 한국인의 사고방식들에서 때를 씻어버리고, 새로 보고 다시 보려는 저자의 뜻을 공감해 주면 고맙게 생각하겠다.
1992년 6월
李圭泰
李圭泰
「이내 가슴엔 수심도 많네」머릿말, 이규태, 1992, 동아출판사
1992년의 글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엄청난 교훈.
읽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지식인의 이야기다.
독선과 독단으로 해치워버릴 일이 아닌데
왜 자꾸만 그네들은 자기네들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