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집의 드넓은 아파트 방한칸을 차지하고 얹혀 살다가 혼자 나와서 살게 된지 한달.

대학 졸업하고,
집은 지방이며,
딱히 친적집에 신세지기 힘든 상황 (이미 오래 눈칫밥먹으며 살았다거나 몸 내맡기기 힘들다거나)의 취업준비생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다.

몇 평되지 않는 작은 방에 인터넷 한줄, 케이블 한줄이 세상을 보는 눈이고
환기도 잘 안되는 작은 창으로 햇빛 구경하고
방음도 잘 안되는 벽에 몸 기대고 자고
한칸짜리 싱크대에서 쌀씻어 밥해먹는다.

찬장에는 인스턴트 라면 참치 김 햄만 들어있고
냉장고엔 집에서 보내주신 김치 오징어채 밑반찬만 들어있다.

물은 무조건 생수만 마신다 - 끓여서 식혀서 물통에 다시 담아 냉장고에서 냉각하고 주전자 씻고 다 마신 물통 세척하기엔 너무 귀찮다.

대학교때 친구와 같이 살았던 3년여의 자취 경험을 비추어
좀 사람답게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이름하야,

여름을 맞이하는 자취생의 행동강령

1. 버려라
여름철 남자가 혼자사는 작은 자취방의 향기는 기대하지 않아도 좋을만큼 퀘퀘하다.
담배냄새, 음식물 쓰레기 냄새, 시켜먹고 치우지 않은 치킨-보쌈 그릇 냄새, 라면 끓여먹고 찌꺼기 버린  등등등

다 비운다.
무조건 다 비운다.

매일 밤 수채구멍에 털끝하나 남기지 않고 자기전에 꼭 비운다.
친구들과 술마시고 들어와서 혹시라도 찌꺼기가 남아있다면
그 다음날 밖에 나가기전에 꼭 비운다.
정말 쌀톨 하나만큼도 남기지 않고 비운다.
그것들 썩은게 모이고 모여서 점액질로 변하고 그게 바로 악취의 근원
위생에도 당연히 안좋다.

수채구멍을 비운 찌꺼기들이 모이는 곳은 바로 음식물 쓰레기봉투
이것도 3~4일, 혹시 너무 안 찬다면 1주일에 한번은 버려라.
음식물 쓰레기봉투 2리터 들이 10개에 1000원인가?
1주일에 한번 다 못채우고 버려도 백원밖에 안한다.
천원이면 두달 반, 1년내내 일주일에 한봉투 씩 버려도 5500원이 안된다.
담배 두갑 더 피웠다 생각하고 쓰레기 봉투 사두면
1년 내내 싱크대가 쾌적하다.

친구들이 몰려와서 보쌈을 시키고 소주를 마셨다.
남은 보쌈김치, 배추, 쌈장, 고추
다 버려라
혹시나 나중에 밥 해먹을 때 반찬으로 먹지 않을까?
그럴 일 절대 없다.
먹고 싶을 때 못 먹을지언정 버려라.
그게 사람답게 사는 길이다.

자취를 시작하고
화려한 싱글남, 요리하는 남자가 되고 싶어서 샀지만
라면 한번 끓여먹고 냉장고에서 썩어가는
양파, 대파, 양배추들.
지금 버리자!
냄새난다고 피하지 말자.
내가 그들을 신선한 채소에서 쓰레기로 만들었다.
내가 죄인이다!!!

무더운 여름
왜 내 자취방은 바깥보다 더 더울까라는 생각들지 않나?
그 이유는 안버리는 습관 때문이다.
방안 곳곳에 모여있는
싱크대 주변에 널려있는
그 쓰레기들이 바로 온도 상승의 주범.
쓰레기만 버리고 걸레 차가운 물에 싹 빨아서 방바닥 한번 닦고나서 샤워하면
냄새도, 열기도 사라진 쾌적한 자취방 만들 수 있다!

좀 더 사람답게, 여자친구 데려오고 싶게, 자고 일어나서 쾌적하게 하는 자취방을 만들고 싶다면
답은 단 하나.
'버려라'




2. 넣어라
앞에서 말한 '버려라'의 연장선에서
일단 방안의 쓸모 없는 모든 것들을 버렸다면
이제 남은 것들은 모두 '넣어라'

나도 그렇고 다들 그렇겠지만
가진 것도 없는 몸에 몸 한칸 눕히기 힘든 방에서 뭐 그리 펼쳐 놓을게 많은지!

주변을 둘러보라.

라이터 5개는 기본
과제/공부/업무에 썼던 A4용지 20장도 있다
책 몇권
각종 영수증
시디
잡동사니
손톱깎이
등등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팔 한번 뻗으면 닿을 만한 곳에 놓여있다.
나의 소중한 잠자리를 손톱깎이, 영수증, 씨디, 잡동사니가 차지하고 있다.

대체 왜?

넣을 곳이 없어서라면
지금 당장 옥션이나 쥐마켓으로 달려가
공간박스 12P 문짝달린것들을 즉시구매 한다.
집을 비울 경우를 대비해서 배송비도 같이 결제한다.
그래봤자 3만원이다.

방안에 일렬로 쭈르르 늘어놓고
그 안에 잡동사니들을 분류해서 집어 '넣는다'
필요할 때 문하나 열고 꺼내 쓰고 다시 '넣으면' 된다.

정리습관이라는게 20년 넘게 길들여 지지 않은 사람이라도
조금만 노력하자

내 방에 나 혼자 뿐만 아니라 여자친구가 근처에서 친구들과 술마시고 자러 와도
쾌적하게 이불 펴놓고 대짜로 둘이 뻗어 잘 수 있는 공간.


충분히 나온다!!!!!!



3. 밀어라
지금까지
손에 닿는 쓸모 없는 것들은 버리고
손에 닿는 쓸모 있는 것들은 넣었다.

이제 바닥에 남은 것은?

탁한 공기의 주범인 먼지
어디서 나왔는지도 모를 각종 쓰레기 부스러기들
청춘이라면 체모들

얘들은 줏어 버리기도, 어디 담아놓기도 그런 애들이다.
이제 할일은 바로
'밀기'
청소기로 밀면 된다.

아주 쉽다

콘센트에 전원을 꽂고 청소기를 들고
아, 그 전에 음악도 크게 한곡 튼다면 더욱 좋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 버튼을 '강'으로 올린다.
혼자 사는 곳이 40평 오피스텔이 아니라면10분안에 다 커버한다.

청소기질이 끝나면 바로 걸레질 한번 한다.
허리도 아프고 하기 싫다고 참지 말자
어차피 청소는 시작되었다.
초등학교때 수학숙제 안 해간 벌로
학교에서 남아서 하던 걸레질을 추억하고싶다면
서서 닦을 수 있는 밀대 하나 사면 된다.
그거 몇천원 안하더라.
네 귀퉁이 집게에 고정시키고 쓱쓱삭삭 닦기만 하면 된다.
간만에 하는거 기분내서 구석구석 닦는다.

오늘의 행동강령 세가지 끝.
더 바라지도 않고
덜 하기도 원치 않는다.

반짝이는 나의 장판
세제 냄새나는 나의 싱크대
자랑하고 싶지 않을까?

상쾌하게 샤워를 한 후 여자친구를 집으로 초대하자.


달라진 그녀의 눈빛.
당신도 경험하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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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rightListen 2008/07/15 06:22 댓글주소 | 수정/삭제 | 댓글

    친구랑 자취 비슷한걸 하고 있습니다. 성격이 좀 어긋(?)나서 그런지 몰라도 승질나는 일 있으면 싱크대 정리부터 합니다. : } 주로 식사는 집에서 해 먹고 빨래는 1주일에 한번, 음식물 쓰레기는 거의 만들지 않습니다. 냄새 때문에 먹을만큼만 하는게 몸에 베여서 남기는 쓰레기는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는.. 그날 귀찮아도 물기를 좀 뺀 다음 까만 봉지에 싸서 동네 한바퀴 삥~ 돌아봅니다. 분명 끝까지 차지도 않은 쓰레기 봉투.. 나옵니다.-_- 풀어서 밀어 넣습니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 쓰면 좋지만 현행법상 쓰도록 되있지만, 거긴 가축에 사료로 쓸 수 있는것만 넣는것이더군요..-_-;; 그래서 대신 물기를 좀 제거한 다음 동네를 한번 돌아봅니다.. 밀어넣고 정리하고.. 하루 삼십분만 투자하면 여친님 눈빛이 달라지는.. 완전 동감합니다. > _"<

  2. 죠제 2008/09/07 04:21 댓글주소 | 수정/삭제 | 댓글

    푸하하 이거 너무 귀엽다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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