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학년 2학기 읽기 첫째마당 두번째 소단원 읽기를 시작했다.
'어머니의 일기'
육아일기를 읽어보고 중요한 내용을 시기별로 찾아서 공부하는 단원.
아이들을 수업에 끌어들이려고 사상최악의 시스템불안정사태에도 불구하고
슬근슬근 아이들을 긁어봤다.
어릴 때 사진 본적 있냐?
어릴 때 기억나?
선생님은 하나도 생각이 안나는데 사진보고 너희 만할때 쓴 일기보면 그때 뭐했는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거든.
슬슬 봇물처럼 자기 얘기들을 순서없이 쏟아낸다.
온라인 수업이라 부득이하게 딜레이를 일부러 만들어넣어서 (개발업체말로는 그렇게 해야한댄다. 좀 이해가 안되지만 아무튼) 말하고 듣는 순서지키기가 정말 어렵다.
저는요~
저저저저저저저저요저요 저요저요
선생님 잠깐만요 화장실 갔다올게요.
몇쪽이에요?
어느 수업시간이든 터져나오는 무의식적인 저 대사들을
작은 입에서 뱉어내는걸 조악한 화질과 쪼만한 모니터 안으로 들여다보고 있자니 참 귀엽다.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수업을 시작하는데
아이들이 글을 읽는 장면장면. 어릴적 추억들이 생각난다.
경상북도 영주시 영주2동 470-220 영주동주공아파트 9동 302호.
내가 중학교 1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치는 주에 우리집은 저기로 이사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 소용없고 썩 잘보지 않아도 아무 지장없는 시험인데,
희한하게 집중되어지는 집안의 기대와 학교와 우리집안간의 오묘한 관계때문에
난 매번의 시험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마치 고등학교3학년 수험생처럼 공부했으며 - 심지어 14살때 독서실의 첫경험을 치뤄냈다.-
평균점수1점, 전교등수, 수우미양가의 내 학창시절을 딱 잘라 말해주는 평가결과 한글자 한글자에
목을 맸었다.
아무튼 이사를 연유로 나는 당시 내가 다니던 중학교의 국어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사촌큰누나의 집에서
시험기간을 보냈다. 누나 차를 타고 학교에 같이 가서 수업끝나고 다시 누나차를 타고 누나네 집으로 돌아가
매형의 서재에서 시험공부를 했다.
그렇게 시험을 치고 며칠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보면 참 작고 오래된 아파트이지만
그전에 살던 8동 204호에 비해서 너무 넓어진 느낌이었다.
그 전에 살던 집에선 동생과 같은방을 쓸 수 밖에 없었는데 처음으로 내 방이 생겼고
내책상과 내책꽂이 내컴퓨터 라디오를 제외하고 내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것들이 생겼고
내 옷장이 생겼다.
8동 204호에 살던 초등학교 시절과 9동 302호에서 시작된 중학교부터의 생활은 그야말로 판이하게 달라진다.
아마 그 이사를 기점으로 누나네 집에서 3박 4일의 시험기간을 보내고 난 후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 놀이터가 2개있었던 우리아파트의 감히 제3의 놀이터라 할 수 있는 7동과 8동사이의 아스팔트 주차장바닥과 멀어졌다. 그 아스팔트 주차장바닥은 절묘하게 경계선이 지어져 있어 배구와 축구 피구 등등. 수많은 협동게임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었고, 충격때문에 박살이나서 다시 만든 한쪽 바닥은 너무나 매끈해서 당시 유행하던 깡통팽이와 쇠팽이를 돌리기에 최고의 장소였다. 게다가 90년대 초반, 지방소도시 영주의 사정상 자가용도 썩 많지않아서 주차장도 꽤 텅텅 비어있어, 우리의 야구장으로 쓰이기도 했다. 끝이 아니다. 아마 아파트를 처음 지을 때 깔아놓았지만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았던 한쪽 코너의 보도블럭은 세월탓인지 울퉁불퉁하게 변해있어서 미니카 경주나 무선 조종자동차 - 모든아이들의 로망이었다. - 오프로드 경주를 벌이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8동 204호에서 땀 뻘뻘흘리며 새까맣게 타도록 놀아대던 전용 놀이터와 함께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9동으로 넘어가자 이제 얘기는 달라진다.
중학생이 되면서 동네 아이들과 볼 수 있는 시간이라곤 고작 학교와 수학문제 풀고 알파벳 외우는 입시학원에서가 전부였고. 난 학원에 늦게까지 남아 공부를 하고 고등부 형누나들 귀가 버스를 같이 타고 10시쯤 귀가하는게 일상이 되어 오며가며 친구랑 얘기하거나, 라디오를 듣는게 유일한 낙이었다.
주말이 되면 혼자 동네 강둑을 산책하고 친구들이랑 자전거를 타고 소수서원까지 하이킹을 하거나 밤늦게까지 유희열의 음악도시를 끝까지 들어보는 것. 뻔한 코스로 달려가면 무조건 이겨버리고야마는 피파98을 하다 잠드는 것 정도.
엄마가 뜯지도 않을거면서 왜 사셨는지 모를 '클래식 100선' 같은 컴필레이션들을 틀어놓고 혼자 시를 써보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 언젠가 다 버렸던 것 같다. '아깝다 지금 읽어보면 참 웃길텐데. 왜 저걸 다 버렸을까' 하는 순간들.
그 정도 생각을 하고 나니
애들이 다 읽었다고 보챈다.
중요한 내용에 밑줄 그어보라 설명하고
애들이랑 얘기하고 공부하기싫다는 세정이 달래고,
분위기 띄웠다 가라앉히고 하다보니 어느새 30분짜리 짧은 수업 2개가 훌쩍 지나있다.
나 혼자 수업하며 감상에 잠겨있고 요즘 별다른 증세가 없어보이던 재범이가 어지럼증을 호소했던 시간.
강의실 밖에서는 안그래도 목소리 큰 연구원님이 괜히 신나서 떠들고 웃으며 공익 보채는 소리, 늦게 수업시작하는 선생님들 출근해서 인사하는 소리, 공익들 모여서 수다떠는 소리 거기에 옆자리 선생님 숙제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읽기시간 덕분에 난 97년으로 돌아갔었는데
수업종료 버튼을 누르니 다시 2007년 10월이구나.
TAG 추억한다
흐음... 세월 참 빠르죠? :)
2007/10/06 18:37